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림무드)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림무드)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사야 50:4)
우리는 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책상 앞에 앉아 방대한 지식을 쌓은 지성인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학자의 원어인 림무드(Limmud)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막대기로 치다’, ‘훈련하다’, ‘익숙해지다’라는 뜻의 라마드(Lamad)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림무드는 단순히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고난과 훈련이라는 하나님의 막대기를 통해 그분의 손길에 완전히 ‘길들여진 존재’를 의미합니다.
림무드의 정체성은 혀보다 귀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귀를 깨우치사 학자(림무드)같이 알아듣게 하신다고 기록합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는 주인의 음성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뛰놀지만 잘 길들여진 말은 주인의 아주 미세한 신호에도 즉각 반응합니다.
진정한 림무드는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매일 아침 창조주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가장 먼저 눈치채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길들여진다는 것은 나의 고집과 자아가 깎여나가고 그 빈자리에 주인의 뜻이 고스란히 채워지는 거룩한 순종의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림무드로 길들이실까요? 그것은 단순히 우리를 순종하는 꼭두각시 기계로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림무드에게 학자의 혀를 주시는 목적은 매우 명확합니다. 바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에 길들여져 본 사람만이 지금 고난당하는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림무드의 혀에서 나오는 말은 화려한 논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길들여진 세월 속에서 우러나온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이자 생명의 언어입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의 제자입니까?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가르침과 가치관에 길들여진 채 살아갑니다. 돈의 논리, 타인의 시선, 혹은 나의 고집스러운 경험에 길들여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림무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제시합니다.
지금 당신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연단과 고난이 찾아왔다면 그것은 당신을 림무드로 빚으시는 창조주의 섬세한 손길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자신의 굳은 마음, 고집스런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길에 부드럽게 길들여질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를 살리는 학자의 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귀를 열어보십시오. 당신을 향한 주인의 세밀한 속삭임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