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손길과 고집스러운 습관 사이에서
사사기 2:11-23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쫓았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지만, 대적의 압박 속에 괴로워하며 부르짖는 그들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셨다. 사사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사사가 죽자마자 이스라엘은 다시 이전보다 더 타락한 길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쁜 행실과 패역한 길을 조금도 그치지 않았다. 본문은 나의 내면을 다시
믿음의 유산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2:10)” 여호수아와 그 시대를 함께했던 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겼다. 하지만 그 세대가 죽자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도, 그분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도 알지 못했다. 이는 단순히
안락함이라는 이름의 불순종
사사기 1:22-36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고 자기들 가운데 머물게 한 이유는 명확했다. 그들을 노예로 삼아 강제 노역을 시킴으로써 경제적 이익과 삶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였다. 겉으로는 공존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자신의 안락함과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뒷순위로 밀어내 버린 계산된 불순종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타협이 아닌 믿음의 순종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삿 1:19-21)” 가나안 정복전쟁 중에 유다는 철 병거 때문에 베냐민은 블래섹
세굴라 (סְגֻלָּה): 왕의 비밀 창고에 간직된 보석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애굽기 19:5) 세상에는 각자마다 귀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를 부르는 이름 중 ‘세굴라’만큼 가슴 벅찬 단어는 드뭅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내 보배로운 소유가 되겠고”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보배로운 소유’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