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의 백합화를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29)”
우리는 흔히 백합화라고 하면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꽃을 떠올립니다. 찬양 가사 속의 백합화를 생각하며 들판을 하얗게 수놓은 풍경을 상상하곤 하죠. 하지만 성지순례 중 “저 들판에 핀 빨간 아네모네가 바로 성경의 백합화입니다”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평생 믿어왔던 흰 백합화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봄(1월~5월)을 수놓는 아네모네는 강렬한 붉은색을 띱니다. 이 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비옥한 토양이 아닌 거칠고 황량한 돌밭과 가시덤불 사이에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전하셨던 갈릴리의 어느 동산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눈에 띄었던 꽃은 아마 이 붉은 아네모네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그 찬란한 영광도 이 아네모네 한 송이만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프라테스 강에서 이집트 접경까지 영토를 넓히고 은을 돌처럼 흔하게 여길 만큼 부유했던 솔로몬의 영화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척박한 땅에 핀 작은 꽃을 더 높게 평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에 씨앗조차 뿌리 내리기 힘든 가시밭에서도 붉은 꽃은 생명력을 발하며 피어납니다. 흥미롭게도 아네모네의 히브리어 명칭인 칼라닛은 신부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인간의 노력으로 일군 화려함보다, 비록 소박할지라도 하나님이 입히시고 돌보시는 생명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이 아네모네보다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답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는 존재이며 무엇보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며 세상과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갈수록 혼탁해질수록 우리를 가장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그 뜻을 묵상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가시밭 같은 세상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